[K바이오리더] 박범찬 와이바이오로직스 부사장 “이중항체 10조 시장 될 것… 항암제⋅급성 백혈병까지 공략”
등록날짜 : 2021.09.10작성자 : 와이바이오로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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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칼텍, 국립보건원(NIH) 연구원 출신
“이중항체 이제 막 성장하는 시장”
“피에르 파브르 이어 파스칼과 기술 협력 논의 중”
와이바이오로직스 박범찬 부사장이 지난 2일 대전 유성구 대덕비즈센터 본사에서 마이크로피펫으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박 부사장은 마이크로피펫을 잡아본 지 10년 정도 된 것 같다고 했다. /김명지 기자
사람 몸 안에 암세포나 병원균이 들어오면 인체 면역세포는 반격에 나선다. 면역세포 주력군인 T세포(T-cell)가 앞장서 암세포 표면의 항원 단백질을 감지해서 공격을 하게 되는데, 암세포는 여기 대응해 T세포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게 방어벽을 쌓는 등 돌연변이(면역회피)를 일으킨다. 최근 면역항암제 기술의 기본 골격은 이렇게 몸을 숨긴 암세포를 찾아내 T세포가 공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와이바이오로직스는 T세포가 돌연변이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인 이중항체 플랫폼 ‘ALiCE(앨리스)’로 미국 특허를 받았다. Y자형 구조의 이 플랫폼은 두 팔에 항체를 실어 암세포를 단단히 붙잡고, 다른 한 다리에 T세포(T-cell)를 데려 와 암세포를 공격하게 한다.
Y자형 구조는 종양 근처에 T세포를 끌어오면서도 T세포가 암이 아닌 다른 곳을 공격해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앞선 세대의 항암제들은 독성이나 높은 비용 등의 문제가 있다면, 이중항체를 동원한 신약은 그런 문제점을 해결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앨리스는 미국에서 4건의 특허를 등록했고, 현재 7건의 특허 등록이 진행 중이다.
와이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12월 이 플랫폼을 활용한 이중항체 신약후보물질(YBL-013)을 중국 3D메디슨(3D MED)에 952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박범찬 와이바이오로직스 부사장은 “그 당시 글로벌 대형 제약사에 기술수출이 힘드니 중국에 파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며 “하지만 이는 전임상과 임상 1상에 드는 비용 문제와, 현재 진행 중인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의 향후 계획을 고려해 결정한 전략적 판단이었다”라고 했다.
와이바이오로직스가 앨리스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신약후보물질을 내기 시작한 것은 채 5년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계속 신약후보물질을 내야 할 테니, 사업 초반 자체 임상보다는 기술수출을 해서 개발 비용을 아끼겠다는 전략이다. 와이바이오로직스는 이미 3D메디슨 외에 인투셀, 픽시스온콜로지, 피에르 파브르 등 6곳에 기술이전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와이바이오로직스는 1000억종 이상 인간항체 유전자를 보유한 ‘인간 항체 라이브러리’로 유명하다. 이 정도 규모는 전 세계를 통틀어 손에 꼽는다. 이 때문에 항체 관련 신약을 개발하는 국내외 벤처들이 앞다퉈 도움을 요청한다. 최신 연구 개발 현황을 듣기 위해 박범찬 부사장을 지난 2일 대전 유성구 본사에서 만났다.
충남대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한 박 부사장은 같은 학교에서 박사까지 마쳤다.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기술연구원(Caltech), 시카고 주립대(UIC),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근무한 후 박영우 대표의 제안으로 2011년 회사에 합류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연구원 생활 10년 했다. 미국으로 간 계기가 있었나.
A.“국내 연구 활동을 하다 보면 시야가 매우 좁아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정보를 듣고 최신 연구를 매일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국내 과학자 연구만 듣다 보니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와이바이오로직스 박범찬 부사장이 2일 대전 유성구 대덕비즈센터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명지 기자
Q. 어떻게 미국의 연구원에 들어가게 됐나.
A.“공고를 보고 지원을 했는데, 운 좋게 됐다. 정보통신(IT)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굳이 외국에 나갈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도 받는다. 하지만 미국은 전 세계 내노라 하는 과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선진 과학 기술을 보유한 나라에서 다양한 시스템을 경험하고, 세계 각국 연구자들의 연구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은 기회다. 해외에 나가면 ‘내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이었나’도 알 수 있다. 해외에 나가보면 ‘한국 사람들 연구 정말 잘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웃음)”
Q. 미국 연구원 생활을 끝내고 바이오벤처에 합류한 지도 벌써 10년이 됐다. 바이오 벤처의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을 같다.
A. “와이바이오로직스에 합류한 게 2011년 10월이다. 이제 곧 귀국한 지 만 10년이 된다. 사실 미국에 있을 때 교단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근무할 당시 워싱턴DC를 방문한 박영우 대표를 만났다. 나를 좋게 보셨는지, 항체 연구에 합류할 의향을 물었다. 박 대표의 첫 제안에 고민은 했다. 그 당시 회사 규모가 워낙 작았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로 가면 연봉은 더 받겠지만, 내가 원하는 신약 연구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이오벤처로 가서 회사를 더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Q. 10년의 성과를 이중항체 플랫폼인 앨리스(ALiCE)라고 봐도 되나. 앨리스는 무엇인가.
A.“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세포인 T세포를 전달하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Y자 형태의 두 팔은 암세포를 단단히 잡고, 다른 한 손은 T세포를 데리고 암세포에 접근시켜서 공격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상용화된 이중항체와 비교해 체내 혈중에 오래 남아 있어 환자 편의를 높이고, 생산성도 좋다. 면역 항암을 하려면 T세포를 최대한 암 종양에 가까이 가도록 해야 한다.”
Q. 사업화는 어디까지 진행됐나.
A.“앨리스 플랫폼의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플랫폼 자체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이 플랫폼에 서로 다른 항체를 싣게 되면, 여러 다른 신약 물질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바이오기업에 앨리스 플랫폼으로 신약후보물질 제작을 허용하고, 기술료를 받는 식이다. 다른 하나는 앨리스 플랫폼으로 만든 신약 물질을 기술 이전하는 것이다. 지금 기술 수출을 하는 것들이 대부분 이런 방식이다. 지난해 중국 3D메디슨에 기술수출을 한 면역항암제 ‘YBL-013’가 기술이전 사례다. 중국에서는 3D메디슨이 임상 1상을 하고, 조만간 우리도 미국에서 임상 1상을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Q. 중국 회사에 기술수출을 한 이유가 있나.
A.“전략적으로 판단했다. 앨리스와 같이 T세포를 연결시키는 이중항체는 전임상과 임상 1상에서 비용이 꽤 많이 든다. 앞으로 임상에 가는 파이프라인이 점점 늘어날 텐데, 초창기 프로젝트부터 힘을 빼면 나중에 쓸 돈이 없을 수도 있지 않나. 3D메디슨이 기술이전에 적극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요즘 중국 바이오 기업에는 투자가 넘쳐난다고 한다. 3D메디슨은 첫 투자로만 1000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중국 바이오 기업들은 그렇게 투자받은 돈으로 해외의 기술을 사들인다. 중국에서 보기에 한국의 신약 물질은 가격도 비싸지 않고, 또 기술 신뢰성도 높아 꽤 선호하는 편으로 안다.”
와이바이오로직스 박범찬 부사장이 지난 2일 대전 유성구 대덕비즈센터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명지 기자
Q. 프랑스 대형 제약사인 피에르 파브르와 기술개발 협력 과정도 궁금하다.
A.“2018년 바이오유럽 스프링 컨퍼런스에서 시작됐다. 2019년에 기술 정보를 업데이트 하는 과정에서 피에르 측에서 우리가 가진 초기 단계의 신약 물질에 관심을 보였다. 2019년 미국 애틀란타에서 미국암학회(AACR)가 열렸고, 그 자리에서 미팅 일정이 성사됐다. 미국에서 만난 자리에서 피에르 측이 추가 자료 요청과 함께 저녁 식사를 겸한 미팅까지 제안했다. 30분 정도 예상했던 미팅이 자정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신약 물질이 있지만, 분석방법을 구축하기가 어려웠고, 피에르는 물질은 없지만 분석툴이 있었다. 피에르 측이 신약 물질 평가를 해보고 싶다고 하길래 ‘기술이전할 생각이 있으면 평가하라’고 역제안했고, 그게 여기까지 왔다. 기술이전을 넘어, 다양한 항체신약을 피에르와 공동 개발하고, 상업화까지 함께 하는 5년 짜리 계약도 최근 별도로 맺었다.”
Q. 또 다른 해외 기업과의 기술 협력 프로젝트가 있나.
A.“급성 백혈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캐나다 바이오벤처인 파스칼바이오사이언스와 기술 협력을 하고 있다. 소아 급성 백혈병은 골수 이식으로 완치 가능하지만, 성인의 경우 악성으로 번져 치료약이 현재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다.”
Q. 현재 전 세계 이중항체 시장 규모는 얼마나 되나.
A.“이중항체 시장은 2018년 3000억원에서 2030년 약 1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중항체는 이제 막 시작하는 시장이다. 약효와 독성 문제만 해결해도 이 시장은 굉장히 커질 수 있다.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가 첫 출시됐을 때 시장이 이렇게 커지리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 않나.”
Q. 한국은 해외로 나가는 유학생도 많고, 정부가 바이오 인력 양성에 투입하는 비용도 적지 않은데, 당장 필요한 인재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떻게 보나.
A.“미국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연구원 포함)을 보면 모두 교수가 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기초 연구에만 집중한다. 반면 중국인 유학생들은 기초과학 뿐만 아니라 산업계 진출도 많이 한다. 중국인 유학생 숫자가 워낙 많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중국 바이오산업에 큰 힘이 돼 요즘 돌아오는 것 같다.
요즘에는 우리 인식도 조금씩 바뀌는 것 같다. 해외 박사들이 모두 국내 대학으로만 가진 않는 것 같다. 물론 대형 제약사로 취업을 더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연구하면서 발굴한 아이디어를 국내 벤처에서 실현하려는 사람도 조금씩 생기고 있다.”
Q. 정부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바이오산업 육성 지원에 나서고 있다.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나.
A.“초기 기술이전을 한 파이프라인 중에 ‘더 크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운 것들이 몇 개 있다. 항체를 만들어서 평가법을 구축해야 하는데, 암환자의 면역세포 같은 시료를 구하지 못해서 기술이전을 한 사례들이다. 면역항암제는 면역세포가 없으면 연구를 못한다. 임상 검체 시료를 얻으려면 대형 병원과 연계를 해야 하는데, 바이오벤처 입장에서는 접근이 쉽지 않았다. 여기에 황우석 사태 이후로 임상 검체를 관리하는 규제도 너무 강해졌다. 적당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산업 발전을 위해서 정부가 유연성을 갖고 접근해주면 좋겠다.”
Q.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 개발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
A.“신약 연구는 최종 허가를 받기까지 10년 이상의 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막상 이 안에서 보면 또 속도 게임이다. 먼저 허가를 받은 쪽이 시장을 독점한다. 우리가 하고 있는 면역항암제 시장도 빠르게 커지고 있고, 각국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잘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의 경우 개발은 물론 공급 능력까지 갖춰야 하는데, 그 모든 것 역량을 갖춘 다국적 제약사에서 파이를 다 가져갈 수밖에 없다고 봤다. 국내에서도 셀트리온 정도 되는 회사나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이 가능했다고 본다.”
Q. 마지막으로 와이바이오로직스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A.“항체 신약 물질을 만드는 것은 경쟁력이 분명히 있다. 1000억종이 넘는 항체 물질에 플랫폼 기술까지 갖고 있으니, 다양한 신약 후보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만들어낸 신약 후보 가운데, 개발 가능성이 큰 것 중 일부는 우리가 자체 상업화하고, 일부는 기술이전을 하게 된다. 상업화 할 신약 파이프라인을 지속적으로 자체 수급할 수 있는 역량이 우리 회사의 최대 경쟁력이다. 다른 바이오벤처와 오픈이노베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회사가 개발한 자체 물질을 제외하고, 오픈이노베이션으로 수행 중인 프로젝트만 10개가 넘는다. 라이브러리에서 항체를 찾아주고, 플랫폼으로 실어주기도 한다. 이런 공동 연구를 통해 상업화 가능성은 더 커진다.”
김명지 기자